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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2014.11.09]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노승환 목사

관리자 조회1129 Nov 07, 2014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40년의 짧은 인생을 이 땅에서 살다 가신 이육사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이원록 시인의 ‘광야’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항일투쟁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서 독립운동을 하다 24살이 되던 1927년에 감옥에서 받은 수감번호가 264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264 숫자의 발음을 그대로 따서 처음에는 죽일 육(戮), 역사 사(史) 육사(戮史)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또 한동안은 고기 육(肉) 설사할 사(瀉)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집안 아저씨의 조언으로 ‘땅의 역사’라는 뜻의 ‘육사’(陸史)로 자신의 이름을 삼았습니다.

중국 북경 감옥에서 그 젊은 나이로 숨질 때 까지 17번이나 투옥되며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 천황에게 절해야 했던 그 시절, 그 땅은 ‘광야’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 황폐하고 메마른 불모의 땅에서 그는 일종의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육사 시인이 어디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대한 이미지를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요한계시록의 백마를 타신 ‘충신과 진실’이란 이름을 가지신 (계19:11) 그 분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도 ‘광야’를 살아가고 있는 저희들의 기대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실 초인이 백마 타고 오실 것입니다.
광야에 있기에 가질 수 있는 기대요 소망입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릴 수 있다면 ‘광야’도 축복입니다.
아니 사실은 그럴 수 있는 ‘광야’가 축복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히브리어로 ‘미드바르’)에서 하나님의 ‘말씀’(히브리어로 ‘다바르’)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답게 훈련되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저는 다시 ‘광야’에 서서 기쁨으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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