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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이 쓴 "슬픔이 기쁨에게" 라는 시는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라는 겁나는 선포를 하며 시작합니다.
슬픔이 기쁨에게 너도 이제 좀 슬픔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입니다.
물론 시인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시를 다 읽어보면 결국 소외된 이웃은 모른 척 하며 이기적인 기쁨에만 들떠있는 삶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섭습니다.
또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책 제목이 "슬픔이 희망에게" 라는 책이 있습니다.
뇌종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 "희"의 투병의 기록을 담았다는 책입니다.
특히 이 책의 내용은 밴쿠버로 유학길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사랑하는 아들이 뇌종양 진단을 받고 그 병과 싸워온 이야기이기에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남 이야기로 들리지 않습니다.
'슬픔이 기쁨에게' 혹은 '슬픔이 희망에게' 등등 왜 다 슬픔이만 목소리가 클까요?
기쁨이는? 희망이는? 왜 다 슬픔이 앞에서 꼼짝을 못하는 것일까요?
왜 늘 슬픔이만 동네 대장 노릇하느냐는 것이지요.
슬픔이는 절망이, 우울이, 외롬이 하고 친합니다.
늘 몰고 다닙니다.
슬픔이가 그렇다고 나쁜 아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 슬픔이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뭐라고 해줄까?
누가 할까?
슬픔이에게 상처 안주고 누군가 한 마디 해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때 소망이가 나섭니다.
소망이 슬픔에게 한 마디 합니다.
"내가 있어 행복하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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